top

전해오는 얘기

◎ 황새바위

용이 푸른 물을 토하며 하늘로 승천 하였다는 청룡산의 앞에
있는 학암산으로 웅장한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 마을의 경사시에 많은 황새들이 날아오고 둥지를 틀어 기르던 곳으로 황새무리들의 행동을 보고 비가 많이오고 장마 여부를 마을 주민들이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소수면 소암리 경기정>

 

 

 

 

◎ 뚜껑바위

소수면 소암1리 신촌(새말)에서 몽촌리 길선을 넘어가는 임도 고갯마루에서 100m 떨어진 낮은 산에 있으며 가뭄이 심하게 들면 마을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고 아낙내들이 떡매채로 이 바위의 뚜껑을 치면 비가 왔다고 한다

 

 

 

◎ 소암리 유래

소암리는 괴산군 소수면 소재지에서 서북방 약10km에 위치한 마을로 북으로는 몽촌리 남으로는 고마리 그리고 사리면 중흥리와 인접하고 있는데 옛날 평강전씨 소유의 연못이 있었고 연못 위에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병인년(약 200년전) 홍수 때 연못은 매몰되고 옛터와 연못 중앙에 위치했던 바위만 남아있어 그로부터 물 자와 바위 을 따서 소암리라 부르게 됐다 하며 그 바위에는 "人岩洞口"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소수면 소암리 전호식>

 

 

◎ 느티나무 군락지

산기슭이나 골짜기 또는 마을 부근의 흙이 깊고 진 땅에서 잘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나무 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비늘처럼 떨어진다. 신라의 삼국통일 무렵 가잠성을 지키다 순사한 찬덕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김춘추가 괴주라는 명칭을 주게 된 군명의 유래와 관계가 있는 애국충절의 혼이 깃든 장수목으로 4월에 개화하여 10월에 숙하며 번식력이 강한게 특징이다.우리고장에도 독립운동한 경권중님의 애국충절의 혼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33여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 구 삼 원 

    경전에 사방정토 중 남방화주 지장보살, 동방화주 약사보살, 서방화주 아미타불에 의하여 

  이곳 지형이 정동쪽 높은 눈비니 앞산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어 서방정토 주불이신 아미타불을

    모셨으며, 태극기 4괘인 건,곤,감,리와 동,서,남,북 사방정토 중앙안의 태극 음,

  자리에 부처님을 모신 의미에서 "구삼"이라 하였고 寺대신 院으로 하여 "九三院"

  라 칭하였다. 아미타불을 모시게 된 계기는 스님께서 몇 차례의 화현을 통하여 동쪽 높은 산

    을 바라보는 곳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시봉하라는 계시륻 받아 이곳에 원행스님은 한국불교 태

    고종 구삼원을 창건하였다.

 

 

 

 

        ◎ 청룡사

 

        설우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고 용이 푸른물을 토하며 승천한 청룡산의 깍아

        지른 듯  한 절벽 아래에 아름답게 지어져 있는 사찰로 1947년 8월 29일 창건하였다 .

 

 

 

 

    

 

◎ 그릇굽던 가마터

사기장골 가마터는 그 목적과 소성효과()에 따라 많은 종류의 요식()이 연구되어 왔다. 가마의 경사도()에 따라 평요()와 경사요()가 있고, 다시 경사요는 아궁이 이외의 전체가 터널 모양으로 된 지하식()과 반지하식(), 지상요() 등으로 구분된다. 또 가마굿의 숫자로 분류하면 굿이 하나로 된 단실요()와 둘 이상이 이어지는 연방요()가 있으며, 여기에서는 질그릇을 만들었던 같이 보여진다.

 

 

        ◎ 고리티 고개

          고개를 넘으면 사리면에 이르는데 지금은 숲이 우거져 도로가 폐쇄되어 통행이 불가

          하지30년전까지도 명덕, 소암 사람들이 증평장을 보기위해서는 중요한 길이었다.

          조선 말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 할 당시 박해를 피해 천주교인들 뿐아니라 외국인

          신부, 선교사  등  많은 사람들 내왕이 빈번했던 길 이었고, 계곡에는 교인들이 모여

          촌락을 이루어 옹기를 굽고 이를 팔아 살며 천주교를 지키던 곳이다.

          (윤의병 신부가 쓴 은화(隱花 "숨은 꽃"에서)